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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도깨비의 농사 이야기

도시촌놈 농사에 도전하다

by 풍요도깨비 2020.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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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이였다. 

갑자기 2월 추운 찬바람을 맞으며 비닐하우스 공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포크레인이 터를 닦고, 인부들이 비닐하우스 자재들을 한 곳에 적재하고 작업 준비를 서둘렀다. 생경한 모습이기도 했지만 친근한 모습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전공이 토목공학이고 첫 직장을 건설회사 노가다판에서 일을 했었다.

몇 번의 직장과 직업을 변경하며 당시는 공유오피스를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했다. 당시만 해도 공유오피스가 많이 없었고 그 개념을 아는 이도 많이 없었다.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에서 최신 트렌드의 신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농사와 대비된 모습이였다.

 

시작은 이랬다.

2013년 어느 날, 나의 친형과 같이 형의 고객인 A사장님의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농장에 찾아갔다. 전부터 A사장님은 형에게 나무를 키워보라고 권했고, 블루베리를 새로 재배하기 시작하신 A사장님은 우리 형제에게도 추천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형이 어느 날 나와 얘기하다가 한번 그 사장님을 뵈러 가기로 했다. 

 

기장군 기장읍 만화리 동서마을이라는 곳이 안평역(부산지하철4호선)에서 기장 넘어가는 고개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마을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에 20~30호가 옹기종기 모인 작은 마을이었다. 

그런데 그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부산 센텀시티에서 차로 25분여 달려 도착한 곳은 정말 시골의 모습이였다. 최첨단 도시에서 금방 시골 풍경으로 바뀌는 것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A사장님 농장에 들어서니 직접 지었다고 하는 움막이 보이고 그 안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동바리 파이프와 합판, 비닐, 부직포 등으로 혼자서 만드신 거란다. 내부에는 에어컨, 냉장고, 싱크대, 가스레인지, 전기패널 등 숙식이 가능한 모든 시설이 갖추어진 걸 보고 새삼 놀랐다.

 

A사장님은 나무키우는 것이 좋아서 지금껏 이 일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젊었을 때 교편을 잡으며 일과 후에 집에 오면 나무를 가꾸고 시간만 나면 그 일을 밤늦게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점점 규모도 커지고 묘목을 주문하는 사람이 생기고, 대량으로 주문이 들어오면서 업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칠순이 넘으셨지만 젊은이들 못지않게 힘든 농사일을 거뜬히 해내고 계셨다. 

 

A사장님의 말씀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나무를 키우는 것은 시간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라는 것. 나무의 성장은 노력도 필요하지만 성목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거름이나 비료를 주고, 돈을 사용해도 어린나무가 성목이 되는 것을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다. 그래서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 성목을 취할 수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년 초(2014년)부터 일단 블루베리 나무 재배를 시작하기로 약속하고, 처음엔 형의 지인과 형,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의기투합, 농사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것도 세 사람이 직장을 다니며 주말에만 일하는 주말농장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지금 비닐하우스 공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평생 벌초때 말고는 낫도 들어보지 않았고, 나무나 화초도 제대로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그리고 이렇게 본격적인 농사, 경제적으로도 부업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사업화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작된 일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 당시를 회상하며 글을 적는 나도 새삼 그 때의 가슴 떨림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이제 그 때의 열정과 설렘을 풀어내어 하나씩 글로 적어보려 한다. 

 

비닐하우스 공사는 전문업자에게 맡겼다. 당시에 100평규모 600만원이 들었다. 평당 6만원. 지금은 평당 10만원정도일것이다.  

 

바닥에 방초매트를 깔고 있다. 우리는 블루베리 나무를 화분에 키우기로 해서 바닥 전체에 매트를 깔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매트 위를 항상 깨끗히 관리 하지 않으면 매트가 풀을 완벽히 막을 수 없다.

 

방초매트를 깔고나니 방처럼 아늑하게 느껴진다. 이제 분갈이를 해서 화분을 채우고 관수시설을 해야한다. 할 일이 태산같다ㅠㅠ 당시엔 실감하지 못했다.

비닐하우스가 완성되고나니 무언가 시작하는 느낌이였다. 땅도 매입한 것이 아니라 A사장님의 소개로 이 마을 분께 임대한 것이다. 사실 시골에 휴경하는 농지가 아주 많다. 하지만 그 놀고있는 땅을 빌리기는 정말 힘들다. 아무나 와서 농사를 지을테니 땅을 빌려달라고 하면 십중팔구 미친놈 취급받는다. 

신뢰의 문제가 남은 것이다. 땅을 빌려주면 그 땅에 비닐하우스도 짓고 나무도 심고, 작물을 키운다. 

그러면 일반 아파트나 상가처럼 계약이 만료될 때 잘 비워주지 않고 속썩일 경우가 생길 것이다. 그러다보니 모르는 사람이 와서 빌려달라고 하면 선뜻 빌려주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마을에 이사가서 한동안 안면도 익히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야 결국 신뢰를 기반으로 땅을 빌려준다. 돈 몇 푼 받는 것보다 속시끄러운 것을 피하고, 차라리 놀리는 것이 났다는 지주들의 판단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마을에 오래 정착하고 덕을 쌓으신 A사장님의 부탁으로 좋은 땅을 구할 수 있었다. 우리 지주는 교편을 잡으셨던 A사장님을 깍듯하게 '선생님'이라고 부르셨다. 결국 'A사장님 믿고 빌려준다'는 말을 강조하며 계약서를 썼다. 참 감사한 일이였다.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일이였기에. 

 

이렇게 빌린 땅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그 시절 그렇게 농사를 시작했다.